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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의 발자국/: 여름

나의 시골마을 이야기: 여름

사계절, 2020. 9. 26. 00:10

나의 시골마을 이야기:  여름 

 

잠에 들기 전, 굳이 숨을 죽이지 않아도 들리는 여름의 풀벌레 소리가 참 좋아서. 후둑후둑 비가 오는 날에는 고인 빗물이 물길을 따라 흘러가는 소리가 참 좋아서. 비가 그친 뒤에는 촉촉해진 풀의 냄새가 더욱 진해지는 시골에 사는 것이, 어쩌면 남들이 쉽게 누릴 수 없는 특권이며, 큰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Walter Gieseking - Quintet for Winds and Piano (1919) 

 

 

I. Allegro moderato

II. Andante

III. Vivace molto scherzando

 

Walter Gieseking - Quintet for Winds and Piano (1919) 

 


 

1  : 한여름 특별 한정 공연

 

찌르르르르- 

어렸을 때부터 들어오던 익숙한 여름의 소리.   

 

시골에 살다 보면, 가로등 불빛조차 비치지 않는 마을이 많은데, 내가 살던 곳. 현재도 살고 있는 곳은 그런 마을이다. 가로등 불빛이 없는 마을의 밤은, 겁이 많던 어린아이가 무서워하기에는 딱 알맞은 정도의 캄캄함이었다.

 

방안에 들어오는 빛이라고는, 더운 여름밤에 열어놓은 창문 안으로, 가끔씩 구름에 걷힌 달빛이 새어 들어올 때 밖에 없었는데, 그때의 달은, 창문을 액자 삼아 노란빛을 뽐내기도 하고, 마치 나에게 내가 있잖아.」 라며, 간간히 고개를 내미는 것 같기도 했다.

 


모든 가족들이 각자의 밤을 맞으러 떠나기 전.

 

엄마, 나는 밤이 무서워.하고 어리광을 부리면,

검정 방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게 될, 겁쟁이 딸에게 양을 세어보라는 조언을 해주시곤 했다. 그것이 부족하면, 오늘 있었던 일 중 제일 재미있었던 장면을 떠올려 보라고. 그러다 보면, 저절로 잠에 들게 될 거라고 덧붙이며, 애정을 담아, 따뜻하게 손을 잡아주고는 방문을 닫아주었다.

 

 

그 조언대로, 눈을 꼭 감고는 양을 세기 시작한다.

양 한마리, 양 두 마리, 양 세 마리 ···

 

 

그러다 지쳐버리면, 하루의 제일 신났던 장면들을 돌려보거나, 밋밋한 장면들에는 상상력을 첨가하여, 더욱 극적인 장면을 만들어 내곤 했지만, 역시나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수많은 양들이 지나쳐가고, 재미있었던 하루의 녹화를 다 돌리고 나면, 다시 현실로 돌아오게 되는데, 그때는 나를 한입에 삼켜버릴 것 같은 어둠이 더욱 확 와 닿으며, 그가 주는 위압감을 이불 대신 덮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럴 때 나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는 이불속으로 들어가서, 잔뜩 웅크린 채로 숨을 죽이고 있다가 숨이 막힐 정도로 더워지면, 그제야 밖으로 나와 숨을 고르곤 했다.

 


시간이 조금 지난 후, 어둠에 익숙해지자, 보이지 않던 것들도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다.

 

시골에서만 볼 수 있는 여러 별자리들. 달 옆구리에서 여유롭게 흘러가고 있는 구름. 회색 구름들을 이리저리 따라다니다 보니, 어느새 빠르게 뛰던 심장박동도 제자리를 찾아갔다. 그제야, 창문 너머에서 울고 있는 풀벌레 소리가 귀에 들어오기 시작하며, 아- 역시 여름이구나.」 를 느끼면서 눈을 감고 풀벌레 소리를 따라갔다.

 

온 집중이 풀벌레 소리에 발이 묶여, 움직일 수가 없어서 그런지, 어둠이 주던 위압감과 그에게 느끼는 두려움은 어느샌가 사라지고 없었다.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며, 시끄럽게 쏘아대는 풀벌레들.

 

왼쪽에서 한번,

찌르르- 

 

오른쪽에서 두 번,

찌륵- 찌르르르-

 


풀벌레들의 합창은, 이때만 들을 수 있는 나만의 여름 한정 공연이다.

 

공연을 즐겨보자. 언제 올지 모르는 잠에 불안한 마음과, 캄캄한 밤이 무섭지 않도록 해주는 특별공연. 한여름밤 공연의 유일한 관객인 나는, 금세 그들의 이야기에 푹 빠져버렸다.

 


풀벌레의 세계로 들어가,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저기서 제일 크게 울고 있는 풀벌레는 대장이야?」

「우리 대장은 평소에는 울지 않아. 

 

「평소에는 울지 않는다면, 어떤 상황에 우는 건데?」

「우리 무리 내에 위험한 일이 생겼을 때나, 모두가 집합해야 할 때만 울지. 

 

「평소에 그렇게 지내면 참 힘들겠다. 

그 외의 상황에 매번 울면, 정말 중요한 상황에 대처하기가 힘드니, 뭐. 할 수 없지.」

 

 ···

 

「너희는 어느 계절을 제일 좋아해? 

「우리는 추워지면, 더 이상 살 수 없어서, 이 여름을 만끽하려고 매일 밤 축제를 즐기지. 

 

「그래서, 매일 여름밤이 너희들의 목소리로 가득 채워진 거구나.」

「혹시 우리가 시끄럽게 했다면, 미안.」, 「 하지만, 어쩔 수 없어. 하고 싶은 말이 많거든. 

 

아냐, 너희 덕분에 매일 밤이 외롭지 않는걸. 

「그렇게 생각해줘서 고마워. 나는 이만 가볼게, 다들 기다리거든. 

 

그래, 다음에 봐.」

 


이렇게 풀벌레 세계에 들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잠에 들어버린 적도 있지만, 더욱 흥미로운 주제가 생긴 날은, 밤을 꼴딱 새 버리는 날도 종종 있었다.

 

상상과 공상이 나의 일부분이 되어가던 것이 아마 이때부터였겠지.

 


상상과 공상으로 하루를 때우는 것이 쓸데없는 소모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있지만, 나에게만은 살아가는 데에 큰 원동력이 되어주기도 하고, 잠들어있던 열정을 깨워주기도 하고, 얼마나 멋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상상하게 해 준다. 특히 내가 어느 정도의 사람이 될 수 있을지 상상하는 것은 정말로 흥미롭고 흥분되는 일이다. 잠을 잊을 정도로.

 


이제는 더 이상 어둠이 무섭거나 두렵지 않지만, 나의 상상 속 세계여행은 끝나지 않는다.

 

때로는 새롭게. 때로는 익숙하게. 

 


가끔은 불면이 고맙다.

 

처음에는 미웠는데, 미운 정도 정이라고 그동안 꽤나 들었나 보다. 

 

 

푹 자는 날이 괜히 아쉬울 때가 있으니.